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1992년에 제작된 역사 [[다큐멘터리]]물. [[영화감독]] [[신승수]]가 나래이션과 사회를 담당했으며 임진왜란의 각 상황을 드라마 형식의 극으로 재현한 것과 당시의 상황 및 당시에 사용한 물품이나 건물 등을 설명하는 것을 합친 다큐멘터리이다. 전반적인 고증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뛰어난 편(복식고증은 아쉬운 부분)이지만 문제는 [[원균옹호론]]을 약간 차용한 것이 옥의 티이다. [[원균]]이 1597년 6월 18일에 조선 함대 100여 척을 이끌고 부산포로 가다가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쳐발린 건 잘라먹고[* 원균이 그것 때문에 권율에게 매를 맞은 것이다. 병력을 허무하게 날린 죄다.] 뜬금포 원균이 [[권율]]에게 곤장을 맞는 것으로 묘사되었다. 하지만 이것 이외의 고증은 전반적으로 우수한 편으로 [[이순신]]에 대한 고증은 거의 맞다. [[이일]]의 모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처벌을 받은 것, 이 때문에 이일이 상주로 데리고 갔던 80명의 장기군관 중 상당수가 이탈한 것, 이순신이 점괘에 능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. 또한 그 외의 세세한 고증도 있는데 [[탄금대 전투]]가 벌어질 당시 비가 내렸다는 것, [[고니시 유키나가]]가 왜교성에서 농성을 벌일 때 수틀리자 명나라 포로 병졸 2명의 손목을 잘라 [[진린]]에게 공갈협박을 한 것, [[행주대첩]]의 전반적인 묘사 등의 세세한 고증이 일품이다. 중간중간에 해설과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까지 곁들였는데 원양어선 선장, 현역 육군 중령[* 이원승 중령(현재 예비역 준장).]현역 해군 대위, 해양대학교 교수 등 전문가로 초빙된 사람들도 다양했다. 그러나 몇몇 고증에 있어서 90년대 초반이라는 한계 역시 뚜렷한 편이다. 대표적으로 명군을 청나라 복장[* 해당 복장은 당시 조선 후기 배경 사극에 나오던 청나라 측 인물의 복장을 재활용한 것이다. 앞선 시기인 1986년에 MBC에서 방영된 [[조선왕조 오백년]] [[임진왜란(드라마)|임진왜란]]에서 명나라 측 인물들이 제대로 된 명나라 복장으로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.]으로 등장시킨 것을 들 수 있다. 당시 KBS에서 아직 명군의 갑옷이 나온 사극이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.[* 한참 후에 제작된 [[불멸의 이순신]]은 명군 병사들의 갑옷은 고증에 맞지만, 대신 명군 장수들의 갑옷은 명나라가 아닌 다른 한족 왕조의 갑옷에 가까운 형태다.] 원균의 아들 [[원사웅]]이 아버지와 함께 [[곤장]]을 맞았다는 근거로 이 프로그램을 드는 경우가 있다.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%ED%86%A0%EB%A1%A0%3A%EA%B6%8C%EC%9C%A8|관련 위키피디아 토론 내용]]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는 원균이 곤장 맞는 것만 나올 뿐, 원사웅이 함께 맞는 장면이 나온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다. 엔딩이 상당히 특이한데, [[고니시 유키나가]], [[가토 기요마사]], [[시마즈 요시히로]] 등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장수들의 후손들이 공항을 통해 [[대한민국]]으로 입국하는 장면을 촬영했다.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죄다 [[야쿠자]] 같은 복장으로 출연했다. 복장은 야쿠자스러운데, 직함은 하나같이 일본 대기업 임원(...). 즉, 일본의 경제적 침략을 경계하자는 메시지라 하겠다....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, 잘 보면 그냥 일본인 출연진들 소개 장면이다. 당시 한국에서 근무하던 일본 기업인들을 섭외해서 일본 장수 역할을 맡긴 것 뿐이다. 현재 유튜브에서 전편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